당신이 고대 수메르 신전의 지하 동굴 속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여기서 카메라 시점은 서서히 당신의 귀 바로 뒤에 안착하면서 폐소공포증을 겪게 해주겠다는 듯이 뭔가 답답한 느낌을 더해주며, 갑자기 디즈니의 뮤지컬 TV 영화인 하이 스쿨 뮤지컬의 밉상 캐릭터 샤페이 에반스로 유명한 애슐리 티스데일의 익숙한 비명이 들리게 된다. 이제 여러분의 떨리는 심장과 함께 퀵 타임 이벤트 반응속도를 시험할 본격적인 공포의 세계에 돌입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에 해당하는 게임들을 할 때마다 이러한 느낌을 받았다. 시리즈의 최신작인 하우스 오브 애쉬도 마찬가지이다. 나처럼 언틸 던(Until Dawn, 2015)이라는 게임이 최신 콘솔 세대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해당 시리즈의 개발사인 슈퍼매시브 게임즈가 이후에도 공포 게임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이 약간 억지로 만들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있지만 딱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면, 시리즈 중에서 하우스 오브 애쉬가 2015년 첫 작품과 비교했을 때 가장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게임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게임의 공식에 질렸거나, 해당 장르 자체가 흥미롭지 않다면 이번 게임 역시 다크 픽처스 시리즈를 다시 보게 할 만한 급의 작품은 되지 못할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여기서 리뷰를 마쳐도 될 만한 구성이다. 슈퍼매시브는 개발사 이름과는 다르게 굉장한 변경점이나 전환점을 고려하지 않았으며, 새로 생긴 난이도 조절 외에는 시리즈 첫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개의 게임이 되어버렸다. 모델링의 목 부분이 액체처럼 흐물거리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캐릭터 표정 묘사의 캡처 기술은 여전히 고품질이며, 게임 내 환경은 항상 그렇듯이 화려한 풍경을 자랑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몇몇 보이면서 더 이상 소니에 개발비를 지원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었다. 캐릭터 움직임은 탐험 시 카메라 구도에 대한 제어권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느껴졌으며, 여섯 시간의 평균 플레이 타임을 진행하며 갈림길 선택과 퀵 타임 이벤트를 진행하는 구조의 게임이었다. 슈퍼매시브가 이러한 공식을 고집해왔던 이유는 나름 이전 작품들에서도 조금씩 조절하면서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질릴 만도 하지만, 알맞게 사용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개발사 이름과는 다르게 굉장한 변경점이나 전환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말하자면, 하우스 오브 애쉬는 이전 작품들보다 더욱 풍성한 스토리를 자랑했다. 맨 오브 메단, 리틀 호프는 언틸 던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반전에 비해 크게 대비되진 않았지만, 하우스 오브 애쉬에서는 그만한 반전 외에도 시리즈 전체의 방향성을 새로 잡아주게 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리틀 호프가 다음 작품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굉장히 기대감을 넘치게 하였기에, 언틸던 에서 느꼈던 소름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욕망보다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의 전반적인 방향성에 대해서 궁금했던 것이 전부였던 기대감을 뛰어넘은 결과물이다.
다만 아직도 대사 곳곳에 어색하거나 뭔가 이상한 부분들을 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스토리의 배경이 이라크 전쟁, 군인들, 사담 후세인의 생체 무기를 찾고 있다는 전개 자체가 역사를 통해 우리가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의 가장 큰 단점은 등장 캐릭터들이다.
캐릭터들 각자의 배경 이야기 또한 클리셰가 넘쳐나거나 뜬금없는 부분들도 없지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미군 해병과 이라크 병사가 어쩔 수 없이 협동해야 하는 스토리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플레이어의 결정에 의해 조금씩 갈라지는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지만 슈퍼매시브 측에서는 캐릭터들 간의 영향력 작업에 큰 신경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이렇기에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의 가장 큰 단점은 등장 캐릭터들이다. 하우스 오브 애쉬는 그나마 맨 오브 메단, 리틀 호프에 비해 크게 성장한 격이다. 그나마 가장 존재감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살림이었다.
하우스 오브 애쉬는 언틸 던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요소들을 다시금 기억나게 해주었다. 슈퍼매시브는 특별한 장면에 대해 텐션 빌드업을 굉장히 잘 소화해냈고, 주변 환경을 최대한 살리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예를 들자면 하우스 오브 애쉬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지하 유적지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 디센트 같은 영감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해당 영화와 하우스 오브 애쉬에서는 비좁은 카메라 각도를 주로 사용하는 것이 연출자의 의도라고 보면 된다. 이러면 폐소공포증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서 공포감을 더욱 조성하게 된다. 비좁은 지하 동굴의 구석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슈퍼매시브는 점프 스케어를 포함한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어들을 놀라게 하는 요소들을 잘 활용하고 있었다.
슈퍼매시브는 다양한 방법으로 플레이어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잘 활용한다.
잔인한 묘사의 죽음에 관한 연출을 좋아한다면 난이도 조절을 통해 퀵 타임 이벤트를 더욱 어렵게 조절할 수도 있다.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듯이 즐기려면 난이도를 더욱 쉽게 하는 설정도 가능하다. 친구들이라는 주제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러한 게임을 재미있게 즐기려면 같이 하기 모드로 플레이 하는 것을 권장한다. 집에 모여서 불을 끄고 다 같이 옹기종기 앉아 플레이하거나(영화의 밤 모드), 온라인 협동 모드(공유된 이야기)로 해도 하우스 오브 애쉬가 주는 공포감은 동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피, 흐물거림, 쫀득한 묘사를 좋아한다면 어려운 난이도로 설정했을 때 원하는 만큼의 잔인한 요소들을 만끽할 수 있게 되며, 나는 개인적으로 중간 난이도(도전)까지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가장 어려운 난이도(치명)로 설정했을 때는 이름만큼 치명적으로 어려웠었다.
하우스 오브 애쉬의 최대 긍정적인 요인들은 미스테리를 극대화하는 슈퍼매시브의 초심을 느낄 수 있는 구성이었다. 맨 오브 메단, 리틀호프의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엔딩에 비해 이번 작품의 엔딩은 모든 것을 말끔히 소화해주었다. 정신이 나갈 정도의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언틸던의 격에 맞는 기대치를 충족해 주기에는 충분했다. 동시에 추후 출시될 후속작들의 방향성마저 잡아준 것 같기에 더욱 기대감이 부풀어졌다. 스포일러를 빼서 말하자면, 슈퍼매시브가 공포 게임을 만든다는 첫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이후에 나올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들은 최고의 명작이 되고자 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분위기였다.
더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하우스 오브 애쉬 같은 공포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당연히 장르에 바라는 기대감의 정도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저기 흩어진 퀵 타임 이벤트와 조금 더 다듬어졌으면 어떨까 하는 대본이 아쉽지만, 폐소공포증을 유발하는 요소들은 언제나 먹히는 레시피이다. 특히 하우스 오브 애쉬의 미스터리를 극대화하는 스토리는 언틸 던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소이며, 미래의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게임들에 대한 방향마저 기대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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